날적이

 번호: 77 작성일시: 2006-09-30 21:52:44 (61.75.39.232)
제목    2006.09.30.토. 파란만장한 그녀
이름    수학맨 조회 : 3425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구월의 마지막 밤을...
(원래 가사가 그러하지만 음반 출시에 맞춰 이용은 구월이 아닌 시월로 불렀다)
내년 이맘때 쯤, 파란만장했던 지난 구월의 마지막날로 기억될 지금은 9월의 마지막 밤이다.

1. 일정

오늘 중요한 일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내겐 직장 사람들과 청계천 유람이 계획되어 있었고, 옆지기에겐 소닉케어 정모가 계획되어 있었다.
시간적 차이가 있어 우리 세 식구는 함께 청계천으로 갔다가 중간에 옆지기가 인사동으로 가기로 했다.

2. 삼인행

삼인행이면 필유아사언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또 어떤 걸 배울 수 있을까?
서둘러 준비했지만, 역시 아기가 있으니 예상보다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마을버스를 눈앞에서 놓치게 되었는데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타고 신도림역까지 갔다.
지하철을 타고 충정로를 거쳐 광화문으로 갔다.

3. 청계천 유람

광장에서부터 아주머니의 안내가 시작되었는데 시작부터 연설이 길었다.
수많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구경거리가 된 듯 서있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일본인 관광객도 아니고...
드디어 이동을 시작했는데 돌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설명하는데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이지는 유모차를 타기도 하고, 걷거나 뛰기도 하고, 안고 다니기도 했다.
뙤약볕 긴 시간이 지나 동대문에서 설명이 종료되고, 옆지기는 인사동으로 가고 우리는 예약해 놓은 냉면집으로 갔다.
주위에 식당이 많겄만 또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시켰는데 다들 맛이 없다고 하고, 깨끗한 분위기도 아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지와 나는 반도 못 먹었는데 나가자고 한다. 배려라고는 없는 사람들.
한 명이 아직 덜 먹었다고 하자 좀 기다리는 듯하더니 얼마 안 되어 다시 나가자고 하여 다들 일어난다.
사람들이 나가니 이지가 밥을 좀 먹기는 하는데 다들 밖에서 기다리니 더 먹일 수가 없다.
9명의 회사 동료들이 왔지만 한두 마디 정도의 대화 뿐이었다.
차라리 일을 했으면 더 나았을 것을...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4. 인사동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번 갈아타 안국역으로 갔다.
옆지기가 인사동에서 차를 마신다 하여 이지와 함께 갔다.
좀 쑥스러운 자리였지만 시원한 음료수(모과차?)를 맛있게 마셨다.
이지는 즐거워했다.
15시 다 되어갈 무렵 찻집(?)에서 나와 카페분들과 헤어졌다.
또다시 뭉친 3인은 인사동 길을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걸어나왔다.
옆지기와 4년 전 처음 만나 갔던 맥도널드가 있었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4년전 그날 갔던 영풍문고에 책을 사러 가려고 했지만 집 근처 애경백화점에서 사기로 해서 종각역에서 전철을 탔다.

5. 안전사고

구로역에 전철이 도착하여 내렸다.
옆지기는 빈 유모차를 책임지고 난 이지와 함께 걸었다. 걷는다기 보다는 거의 뛰어 다닌다.
넘어진다고 걸어 가라고 해도 앞에 가는 엄마 속도를 맞추려고 그러는지 연신 뛰어 다닌다.
오르막 계단에서 안아주려고 했지만 "이지가"를 연발하며 스스로 계단을 올라간다.
손을 잡아주려고 해도 뿌리친다. 나중엔 힘들었는지 장애인용 리프트 난간(?)을 잡으며 올라간다.
애경백화점에 도착하여 4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복잡하여 이지와 나만 타고 옆지기는 타지 않았다.
이지가 문에 손을 대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다.

4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가 열리는데, 반만 열리고 멈춰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이지의 손이 열리는 문과 함께 오른쪽 문틈에 끼어 있다.
네 개의 손가락 모두 세 마디의 중간까지 들어가 있는 상태다.
문은 고정되어 움직일 생각을 않고 팔을 당겨보지만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떡해, 어떡해" 하고 있고, 위기 상황에서도 늘 침착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나이지만 이순간 만큼은 정신이 없다.
그렇게 멈춰있는 듯한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에 문이 움직였는지 이지의 손이 빠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간적으로 문을 밀면서 손을 뺐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때는 이지의 팔을 잡고 있어서(마치 놓으면 더 깊이 빨려들어갈 거 같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까?) 무기력할 뿐이었다.
그러한 것이 훈련이 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안전사고가 얼마나 많겠는가?

우는 이지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찬물에 손을 씻겼다.
옆지기도 올라왔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다. 나보다 더 놀랐으리라.
이지에게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해보라고 하니까 울면서도 잘 한다.
껍질이 약간 벗겨진 부분이 있고, 붓거나 짓눌린 부분이 있기는 해도 뼈는 안 다친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한의원(정형외과는 안 보여서)에 가니 괜찮으니 안티푸라민 정도만 발라줘도 된다고 한다.

이지는 많이 아프고 놀랐는지 울다가 잠시 멈췄다가도 이내 다시 울기를 반복한다.
생각할수록 아프고 아빠가 미울 것이다. 이지에게 너무 미안하고, 더욱 더 조심해야겠다고 깨달았다.
평소 넘어져서 상처가 나거나 혹이 나거나 멍이 들어도 어릴 때는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 해왔지만 이런 기계에 의한 사고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항상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오늘의 사고를 교훈삼아 사고는 상상 불가능한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

6. 집으로

가여운 이지를 안고 서점에서 책을 사서 바로 집으로 왔다.
잠시 쉬었다가 문병가려고 했으나 이지의 방해로 쉴 수 없었다.
피곤할 텐데도 자려고도 하지 않는 이지. 배고픈가 물으니 그렇단다.
못난 아빠와 함께 다녔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랴.
데우지 않은 된장국을 밥에 비벼 주는데도 잘 먹는다.
옆지기는 많이 피곤했는지 아직 안 일어난다. 나도 밥을 먹었다.

7. 병원으로

일어난 옆지기에게 저녁을 권하지만 친정 어머니 생각에 밥생각이 없나 보다.
롯데백화점 지하에 주차를 하고 보라매병원으로 갔다.
이지를 보고 좋아하시는 장모님, 그러나 겉보기에도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신다.
병원에서도 집안 걱정으로 편히 못 쉬는 듯하다.
휴식이 필요할 텐데 처남네 식구들은 1층에 계속 있는가 보다.

8. 쇼핑

백화점으로 와서 달걀, 우유, 고기, 공책 등등을 샀다.
추석 대목이라 그런지 선물세트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지만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쇼핑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이지도 드디어 잠이 들었다.

그대로 내일 아침까지 자준다면, 오랜만에 푹 자게 된다.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낸 그녀, 내일을 위해 충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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