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녀가 잠든 동안 족구복으로 갈아입고 재활용품 분리배출하고 족구장으로 나갔다. 신은 지 얼마 안 된 족구화가 발에 꽉 맞아 불편했는데, 나중엔 오른쪽 뒤꿈치 윗쪽에 엄지손톱 만한 물집이 생겼다. 날씨는 좋았지만 지친 사람들이 있어서 12시쯤 마쳤다. 그래도 4시간 정도 신나게 했으니 만족한다.
족구인들과 함께 뼈다귀해장국에서 식사를 했다. 회장이 몇 주 전 동맥경화로 수술했는데, 담배를 많이 피우시더니 이번에 수술하면서 끊으셨단다. 총무는 7년 전 끊었다고 하고, 젊은 자루형은 식사 후에 담배를 피웠다. 아직 간절하지 않은가 보다. 시골에서 오랫 동안 담배 농사를 짓는 걸 봐왔지만 내겐 기호가 맞지 않는 담배.
오후에 옆지기와 이지를 태우고 보라매병원으로 갔다. 영웅이와 소영이, 그들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약속이나 한 듯 우리와 거의 동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에서 장모님을 뵈었는데 많이 피곤해 보였다. 검사를 많이 해도 아직 뚜렷한 결과는 안 나오는 모양이다. 다음주에는 추석 연휴도 있고 해서 담당 의사가 심혈을 기울여 봐주실 수 없을 거 같은데 걱정이다.
30분 정도 있다가 우리는 기식이네 집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에 흰색 세피아가 당당히(벽쪽으로 좀 더 붙여줬으면 좋겠는데) 세워져 있어서 어렵게 들어갔다. 원룸으로 이사하게 되면 필요없을 짐들 좀 가져오려고 했는데, 책상이 너무 커서 차에 실을 수 없을 거 같다. 옆지기가 보기에 깨끗해 보이지도 않고, 우리 집에도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래도 그 책상이 우리 집에 있는 책상보다는 좋은 것인데... 재활용센터에 전화하면 올 것이니까 책상, 세탁기, 냉장고 등등 모든 것에 대해 견적받아보라고 해줬다. 나올 때는 T 코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위치에 세피아가 있어서 결국 들어갈 때보다 더 힘들게 후진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이지를 아기 욕조에 물받아 놀게 하고, 나는 큰 욕조에서 샤워를 했다. 이지가 작은 욕조가 답답했는지 나온다. 미끄러워 위험한데... 큰 욕조에 이지를 앉히고, 아기 욕조의 물을 모두 옮겼다. 샤워기의 물을 틀어 놓으니 너무 좋아하는 이지. 한참 동안 물에서 함께 놀았다. 머리도 감기고 가볍게 비누칠을 해서 씻겼다.
낮잠 잘 시간이 되어서 이지를 재우고, 족구장에서 자루형이 했던 얘기가 생각나 FBB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낙지자. 아는 것은 잘하는 것만 못하고, 잘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족구를 좋아하는 우리들이 카페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00년 6월. 초기 멤버로서 추억도 많고, 카페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였다. 카페를 만든 볼보이는 6개월 정도 열심히 활동하고는 내게 운영을 맡기고 잠수했다. 나중에 그가 이혼 위기까지 갔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쨌든 카페엔 족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이게 되었고, 바람직한 카페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들 활동했다. 온오프라인 모두 모범적인 모임이 되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서울시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실제 모임에 나오고 활동하는 사람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카페 규모도 점점 커지고 온라인 회원수는 수천명에 이르렀다. 우리의 자랑스런 선수 중 한두 명씩 스카웃(?)되어 나가기 시작했고, 삐걱거리기 시작해다. 정기 모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나에 비해, 대회에 많이 나가 최고의 팀이 되고자 하는 부류의 목소리가 커지고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 지역 모임에서 따로 활동을 하면서 정기 모임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인천, 분당, 일산, 포천, 심지어는 대구에서 근무하던 친구도 정기 모임에 참석하던 때가 있었는데...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읍참마속하며 모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미 모임은 없어지고 팀만 남게 되었으나 그마저도 올해는 선수 일부가 한틀 소속이 되면서 FBB로의 정기 모임은 없는 상태다. 만 명이 넘는 카페 회원이 있으나 오프라인 모임이 없는 현실.
카페에 바람이 몇 주 전에 올린 글을 봤다. 그때 만큼은 안 될 지라도 가끔 그때 그 사람들이 모여 족구가 되든 친목 모임이 되든 정기적으로 모였으면 한다는 글이었다. 선수로 활동했던 바람, 스피드, 그리고 여전히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들소, 외국에 나가 있는 레오형, 잠실로 이사했다는 두꺼비 등등 반가운 이름의 동지들이 동참하는 꼬리말을 달았다. 그때 나의 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게 소중한 친구들, 늙어서도 함께 운동하길 바랬던 그들. 10년, 아니 5년도 함께 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 다시 뉘우치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 함께 운동할 수 있을까? 그땐 대부분 홀몸이었는데 이제 대부분 이지와 같은 아기들을 두고 있는데...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이 되더라도, 그 장소가 어디라도 난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저녁엔 자이비타 등 몇 가지 선물을 갖고 미연네 집으로 갔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쌍생아가 있어 이번 추석엔 시골 안 내려간단다. 추석을 쇠고 누나가 또 미연네 집에 온다고 하니, 누나네 줄 선물도 함께 갖고 갔다. 이지는 치성이와 잘 놀았다. 치호는 벌써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한다. 치호와 소희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집에 올 때, 지하2층 주차장에서 1층까지 이지 혼자 계단을 올라오게 되었다. 잡아주려고 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이지가"를 외치며 손을 뿌리친다. 좀 걷다가 힘드니 난간을 잡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중엔 올라오는 속력도 줄어든다. 52개의 계단을 하나 하나 잘도 걸어올라온다. 내일 마라톤대회 나갈 녀석이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