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 이야기

내게 가장 큰 두 가지의 재산을 들라고 한다면 정직과 건강이라고 할 것이다

족구장에서 만난 사람

동호회라고 하면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이 그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발전 방향도 논하고 같이 즐기기도 하기 위한 모임을 말한다. 그러한 것을 통해서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되고 사람들간에 유대관계도 형성되고 친목도 도모하게 된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그리 많지는 않다. 여럿이 하면 재밌는 운동은 많다. 늘 아는 사람들과만 운동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럴 순 없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운동하러 갔다가 모르던 사람과 함께 운동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해서 그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난 아직 어떤 운동 동호회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좋아하는 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 중에는 기억나는 사람들이 많다. 테니스장에서 혼자 벽치기를 하던 나에게 코트에서 같이 치자고 해서 알게된 사람들을 비롯해서 축구, 탁구, 수영 등등 말이다. 물론 대부분 이름도 못 물어봤지만 얼굴은 기억나는(어떤 사람은 가물가물하다)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여기선 족구장에서 만났던 인상깊었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노인 족구 - 1996년 가을 금오공대 족구장

그날 나는 몇 명의 사람들과 족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족구장을 서성거리던 양복 입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의 게임이 끝날 무렵 그가 모시고 온 사람은 모두 머리가 희끗한 노인분들이었다. 10명 남짓한 인원이었는데 그분들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공무원인 듯했다. 5명씩 두 팀이 족구를 했다. 무척 점잖은 분들이었다. 나와 같이 경기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갔지만 나는 남아서 구경을 했다. 그분들의 경기가 끝나면 또 족구장을 지키며 더 하려고 말이다.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았던 나의 선입견과는 달리 그 경기는 예상밖으로 재미있었다. 노인분들이라서 아무래도 동작이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모두 공을 많이 다뤄봤음에는 분명했다. 젊은 개발(犬足)보다 백배는 나았다.

노련함이란 이런 것이다. 비슷한 체력을 가진 두 사람이 등산을 한다. 한 명은 등산 경험이 많고 다른 한 명은 경험이 많지 않다. 이 때 같이 정상까지 올랐을 때 누가 더 지쳤을까? 아마도 경험이 적은 쪽일 것이다. 왜냐하면 등산 경험이 많은 사람은 나름대로 산을 오를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체력소모를 줄이는지 알고 그렇게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걸음걸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팔은 어떻게 흔들 것인가, 허리는 어느 정도 굽힐 것인가, 시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계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족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족구는 기술이 좀 필요하기 때문에 초보자와 숙련자의 차이는 훨씬 크다. 초보자는 불필요하게 체력소모를 많이 한다. 제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는 공을 점프를 한다거나(이럴 때 체력소모가 훨씬 크다), 공의 낙하지점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서 불필요하게 많이 뛰거나, 불필요한 몸동작(팔, 다리, 기타)이 많다. 이에 비해 숙련자는 공에 물리력(상대편이나 자기편의 선수가 머리나 발을 이용하여 공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가해지는 순간 공에 들어간 힘에 의한 방향, 속도, 회전력 등으로 공의 낙하지점을 미리 예측하고, 그 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지금 얼만큼의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서 공이 얼만큼의 높이에 있을 때 어느 방향으로 얼만큼의 힘과 속도로 머리나 발로 물리력을 가할 것인지를 계산해서 움직이게 되므로 불필요한 동작을 최소화시킨다. 물론 공에 물리력이 가해지기 전에 가역자(공에 물리력을 가하는 사람)의 사전 동작(폼)을 보고 어느 정도는 예측하며 이때부터(경우에 따라선 혹은 그 이전부터) 위치(포지션)를 잡기 시작한다. 이런 것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체력소모의 차이가 크다.
체력소모가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두 게임만 하고 그친다면 그런 것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날을 잡아서 운동하려는데 기술에 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해도 체력이 남보다 뒤진다면 창피한 일이 아닌가. 시합에서는 실제로 체력이 중요하다.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축적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이 지구력이며 지구력이 강해야 함은 당연하다. 지구력 강화를 위해선 불필요한 동작을 최소화시킨다는 것을 명심하자. 단, 불필요한 동작을 최소화시키는 것과 동작을 크게하는 것과는 다르고, 시행착오를 많이 해보는 것과도 다름을 알리니 오해말기 바란다.
또한 노련함의 차이에 따른 체력소모 뿐만 아니라 가역시의 힘, 방향, 회전(스핀) 등의 정확성에 관한 기술적 차이는 훨씬 크다.

아무튼 그 노인분들은 노련했다.
예를 갖추고 경기를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그렇게 경기를 많이 해 본 것임에 분명했다. 심판을 보시는 분도 따로 있었다. 공격수는 다리를 높이 올리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공이 힘있게 나갔다. 수비수도 발, 머리 등을 이용해서 잘 받아냈다. 몇 가닥 안 남은 빛나는 이마로 받는 실력도 좋았다.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근데 경기도 밀리고 있고, 심판도 맘에 안 들었던지 한 분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중엔 나보고 심판을 봐 달라고 했다. 심판 말에 복종하기로 양팀이 합의를 보고서 말이다. 게임이 생각대로 안 풀리고 내기가 걸렸으니까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척 우스웠지만 그냥 미소만 지었다. 아뭏든 그날 무척 재밌었는데 오래된 일이라 모든 것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40년쯤 지난 후에 과연 내가 그분들처럼 함께 족구할 사람이 있을까? 그 연세에 그렇게 운동하는 그분들이 무척 부러웠다.

족구 예찬론

우리 나라는 국토의 약 70%가 산이다. 좁은 국토에 비해 인구는 많다. 대다수의 국민이 어릴 때부터 공을 차고 노는데 익숙하다 보니 족구(발배구)는 쉽게 배울 수 있으며 우리 나라의 구기 종목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세팍타크로'라는 족구와 비슷한 종목은 전국체전에까지 있다. 하지만 이건 일반인들엔 익숙지 않다. 공(특히 축구공)만 있으면 좁은 장소에서도 금을 그어 놓고 적은 인원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족구다. 족구는 네트경기이기 때문에 축구처럼 다치거나 농구처럼 싸울 일이 없다. 또한 반칙 등의 이유로 경기를 지연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네트 경기이면서도 발차기의 화려함이 있기에 네트 경기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투기가 사람을 때리는 경기인데 반해 족구는 공을 때리는 것이므로 비폭력주의자들에도 족구는 큰 인기를 끈다. 때리고픈 공격욕과 막고픈 방어욕을 정당하면서도 즐겁게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족구이므로 족구력(?)의 향상은 개인의 건전한 욕구 충족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또한 여럿이 한 팀이 되어 한 점, 한 점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동심도 발휘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국기가 태권도인 만큼 국민의 대부분이 태권도를 접해 봤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본 조건은 모두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족구의 범국민적 대중화로 개인의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함은 물론이고 바르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족구황제 진태식

족구황제란 별명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족구를 도대체 얼마나 잘 하기에 황제일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이클 조단의 별명이 농구황제이지만 그리 잘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나도 족구황제란 별명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리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인 이상 다 비슷하지 않을까? 조단이 농구계의 황제란 것은 전세계에서 인정하지만 내가 족구계의 황제란 것은 아직 한국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한 데에 차이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에 대해서 일일이 쓴다는 것은 보는 이에게 짜증을 줄 것이므로 간략히 족구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즐겼던 관계로 대학에 와서도 테니스를 많이 했었다. 축구도 좋아했지만 기회가 많지 않아서 자연히 쉽게 접할 수 있는 테니스에 온 정열을 다했던 것이다. 족구엔 개의 발이나 다름없던 나였지만 가끔씩 선배들과 하는 족구가 재미있었고, 그게 족구의 시작이었다.

군대에 가서도 족구를 많이 하고 싶었지만 우리 소대는 전통적(?)으로 축구를 많이 했다. 군대 축구는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에겐 짜증 자체였다. 스포츠 정신도 없고, 그렇다고 군인 정신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후임병들에겐 고통 자체였다. 골인을 당하거나 하면 가혹한 욕설과 책임이 나약한 수비수 후임병들에게 왔기 때문에 내가 고참이 되었을 때조차도, 심지어 전역하고도 몇 달 동안은 축구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있었다. 족구는 축구에 비해 소수 인원이 하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얘들을 골라서 하므로 가혹하지 않고 화기애애한 경기였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족구를 군에서조차 자주 하지 못했기에 스트라이커로서의 자질을 많이 향상시키진 못했다. 오히려 태권도를 통한 부단한 발차기의 노력이 나중엔 큰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군 전역하고 몇 달 동안은 고향에서 부모님의 일손도 도우며 컴퓨터 프로그램도 짜고 했었다.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남동생과 집에서 공을 차거나 줄넘기 등을 가끔씩 했다. 남동생에게 태권도 발차기나 족구 발차기 등도 가끔씩 가르쳐 주었다. 군에서 늘 차던 샌드백이 집에는 없으니까 발이 허전하기도 해서 터진 공의 검은 튜브를 줄에 묶어서 마당에서 발차기 연습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연습했던 게 족구 발차기 기술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군에 있는 동안 테니스를 못 쳤기에 복학하고는 예전에 함께 치던 친구와 또 자주 테니스를 쳤다. 테니스는 사교스포츠로선 최고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많이 알면 아주 재밌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한두 시간을 친 후 친구가 지쳐 그만하자고 하면 난 족구장으로 발을 돌리게 되었고, 그것이 쌓이다 보니 아예 족구장으로 가게 되면서 테니스와는 담을 쌓게 되었다. 퍼스트 스포츠가 테니스에서 족구로 바뀐 것이다.

처음엔 선배들을 꼬시고 해서 족구를 했지만 난 매일 족구를 원했기에 매일 상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1(한 명 대 한 명)로도 하기도 하고, 1:2, 2:3, 5:5 등 인원을 가리지 않고 했다.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자서 벽이나 네트에서 연습을 했다. 족구에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눈치보면서 함께 한 적이 수없이 많다. 우리 과 학생들과 함께 하기는 오히려 어려웠다. 나에게 붙잡히면 못 빠져 나온다는 헛소문이 돌았는지 도통 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튼 혼자 연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을 찬 회수가 백 번이 되고 천 번이 되고 만 번이 되면서 점점 다듬어지는 것이다. 태권도의 발차기를 이용하고, 나름대로 연구해서 이것저것 많이도 차 봤다. 뛰어 차기의 착지 시 불안정이 쌓여 발목의 통증에 절기도, 높이 차기를 하거나 특수 발차기 시 골반의 불안정이 쌓여 또 사타구니의 통증으로 절기도 많이 했다. 결국 이래저래 다리가 아플 때마다 직업병(?)을 실감했다. 95년 가을부터 97년 봄까지는 거의 매일 2-4시간씩 족구장에서 지냈다. 이제 웬만큼 동네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다. '정말 잘 한다', '날렵하다', '빠르면서 정확하다', '족구를 탁구치듯 한다'는 등의 칭찬을 아낌없이 받으니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다.


최초 작성 :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