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황제의 변(辯)

형편없는 주제에 족구황제라고 칭하는 그의 변명

진태식, 족구황제 진태식, 그것도 모자라서 '수학맨 족구황제 진태식'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엄밀히 말하면 떠들고 다니진 않는다. 하지만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홈페이지 타이틀이 그러하니까. 이제 오프라인에서 나의 족구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바로 족구황제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족구황제란 별명을 붙이기엔 형편없으니까. 난 변명하기를 좋아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이제 변명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족구황제의 홈페이지를 처음 만든 때는 1996년 3월 29일이다.
그 때, 대학교 3학년의 복학생이었다. 족구를 좋아했고, 잘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족구에 관한 홈페이지라곤 찾아보기 힘든 시기였다(족구연합회 홈페이지가 1999년도에 생겼음을 상기하라). 소위 말해서 먼저 홈페이지를 만들고 족구황제라고 하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그가 원조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적중했다. 2001년 4월 15일 현재, '족구황제'라는 사이트는 여기밖에 없다. 물론, 실력으로야 남들이 인정하지 않겠지만, 좋든 싫든 내 홈페이지에 들어오게 되면 족구황제라는 건방진 타이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어느 누구라도 홈페이지를 만들고는 족구황제라고 해도 난 이를 방해할 권리도, 생각도 없다. 비록, 그의 홈페이지가 더 인기가 있더라도, 남들이 그의 홈페이지를 진정한 족구황제의 홈페이지라고 인정을 하더라도 난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진정한 족구황제라고 시비를 걸어와도 난 그 시비에 휘말리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각기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내가 그의 삶을 인정하듯 그도 나의 삶을 인정해 주길 바랄 뿐이다.

요즘은 다음까페(http://cafe.daum.net/fbb)에서 족구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동호회원은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진정한 네티즌 동호회이다. 동호회 모임은 주말(토요일, 일요일)마다 있으며, 공휴일도 거의 놓치지 않는다. 모임에선 주로 별명을 부른다. 지금은 내 이름을 대부분 아니까 진태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족구황제 혹은 황제로 많이 불려진다. 별명을 부르는 그들도, 그렇게 불려지는 나 또한 좀 거북할 때도 있지만 네티즌 동호회의 특성이지 않은가. 그래도 마당쇠라고 불려지는 것보단 좋다.
다른 족구팀(네티즌 팀이 아닌 지역팀)들과도 자주 경기를 하고, 이제 얼굴도 많이 알려졌다. 그들 중 일부에게도 난 진태식으로 불려지지 않고 족구황제로 불려진다. 어르신들로부터 그렇게 불려진다는게 황송하다. 그렇던들 어쩌랴. 이미 '족구황제=진태식'으로 매치가 된 이 마당에 흔히 남들에게도 많이 있는 별명을 다시 지어 그들에게 하나의 단어를 더 외우게 하고 혼란을 줄 필요까지야 없지 않은가.

수학, 족구, 컴퓨터를 좋아한다. 이들 중 어느 하나에도 미치지 않았던 것은 없다.
늘상 머릿속엔 수학문제들이 들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퀴즈나 퍼즐이라는 것들을 포함하여... 한 문제가 풀리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런 문제들은 있었고, 그런 문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이 머리 한 켠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을 땐 뭔가 빠진 듯 허전했다. 그러다 어느날부턴가 그것이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나브로 멀어진 듯하다. 하지만 수학적 사고방식은 늘 합리적인 생각의 주축이 되고 있다.
머릿속엔 합당한 알고리즘이 충만했던 적이 있었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있을 때도, 육체를 즐겁게 하기 위해 테니스를 칠 때도, 지치고 무거운 눈을 감으며 잠자리에 들 때에도... 엄밀히 말하면 껍데기 컴퓨터를 좋아했다기 보단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프로그래밍하기를 즐겼다. 그것은 갑자기 생각난 정수에 관한 어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테트리스같은 게임을 작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원주율계산같이 아무 쓸모없는(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좋은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것이기도 했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내게 컴퓨터는 직업이기도 하면서 취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내 취미 중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왜냐하면 돈벌이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구나. 하지만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느라 며칠간 컴퓨터를 볼 수 없게 되더라도, 혹은 사정이 생겨 컴퓨터없이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남들처럼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족구는 다른 취미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한 놈이다. 수학이나 컴퓨터가 강산이 한 번 반 정도 바뀌기 전을 초기로 잡을 수 있다면, 족구는 시작시기가 나머지의 3분의 1 정도밖에 못 거슬러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열심히 했다. 학창시절, 미식축구부가 집합하기 전에 족구장에서 몸풀기 시작했고, 미식축구부가 다 들어가고 가로등만이 내 시야를 도울 때까지도 발차기 연습을 했다.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까지 매일 족구장을 지키던 때가 있었다. 새로 산 싸구려 축구화(그 땐 족구화도 몰랐다)는 2주가 지나면 오른쪽 엄지발가락쪽이 터지기 시작했고, 걸레같이 닳을 때까지 신곤 했는데도 오래지 않아 새로 사야 했다. 족구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자리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리 능력있는 놈이 아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직원들과 족구를 한다는 건 꿈만 같은 얘기다.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직원들과 족구를 못 해봤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왜냐하면 난 그리 능력있는 놈이 아니기 때문이다. 족구할 수 있는 회사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엔 많은 가치 기준이 있다.
예를 든다면 정직은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친구일 것이다. 내가 미쳤던 취미들. 그 어떤 것도 지금의 취미가 아닌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은 미쳐있지 않다. 앞으로 수학책을 보지 않는다 해도 크게 낭패를 당하진 않을 것이고, 컴퓨터를 만질 수가 없다고 해도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취미를 찾겠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족구없이도 살 수 있다. 그럼, 족구를 이길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순서를 부여해야 한다면 어떨까? 물론 많은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여기서 내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두가지만 고를 것이다. 세계평화도 중요하고 국가의 이익이나 사회의 안정도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이런 건 공통적인 문제이므로 어디까지나 좀 더 개인적인 것에서 찾는다.
가정, 직장(일), 그 다음이 족구라고 생각한다. 내 비록 주말마다 족구를 하지만 회사에서 일이 생겼을 경우, 족구를 위해 직장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생계를 위한 자기 일이우선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돈벌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가정의 평화다. 가정의 화목이 깨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넓게 생각하면 사회까지 흔들리게 되겠지만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이다. 가정이 화목하지 않고서야 어찌 일인들 제대로 될 것인가.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도 하고 인격완성도 한다. 다 좋다. 하지만 직장문제로 인해 가정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처자식을 버리고 직장을 택할 것인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게 훨씬 동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족구를 좋아해서 족구황제. 이런 저런 얘기로 떠들어 봤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할 때가 되었다.
민족스포츠 족구, 그에 미친 사람은 많다. 족구가 돈벌이가 아닌 대부분의 족구 마니아들. 그들은 여가 활용의 수단인 족구를 위해 오늘도 각자의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이 일터에서 흘리는 땀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흘리는 땀이다. 그들이 여가 활용의 수단으로 삼는 족구는 단순히 그들만의 놀이가 아니다. 자신들의 일터에서 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기 위한 윤활유인 것이요, 가정을 보다 더 화목하고 건강하게 하고자 하는 활력소인 것이다.


최초 작성일 : 2001.04.15